본문 바로가기
감동

처음으로 아웃백(패밀리 레스토랑) 가던날 (감동글)

by 오래된창고~! 2022. 7. 18.
반응형

픽션인지, 논픽션인지, 픽션에 논픽션이 가미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. 그런 건 상관없다.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글이라면 아무래도 좋다.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란다.

 

(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펌)

오늘 태어나서 처음 아웃백에 갔다. 난 엄마 얼굴을 잘 모른다. 내가 5살이 되던 해, 엄마가 죽었다. 빠듯했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식당 일을 나가고 돌아오던 길에 차에 치였다고 한다. 엄마가 죽고 난 후 일용직 노동자, 소위 말하는 막일 꾼인 아빠는 8살 배기, 5살 배기 딸 둘을 혼자 키웠다.

건설현장

우리를 없게 키우지 않기 위해 아빠는 피눈물을 흘렀지만, 애석하게도 아빠의 피눈물의 대가는 크지 않았다. 그냥 나와 내 언니와 아빠, 세 식구가 죽지 않고 살 정도였다.

초등학교 입학을 했다. 너무나도 예쁜 원피스를 입고, 공주 같은 구두를 신고, 누군가가 잔뜩 신경 써 준 머리를 하고 등교했던 내 짝의 외모에 홀려 친구가 되었다. 그리고 그 아이의 집에 놀러 갔다. 그때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. 집 벽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 수 있단 것을, 집에 미끄럼틀을 놓을 수 있단 것을, 그리고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...

중학교 입학을 했다. 언니는 집이 가난했기에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해 상고를 갔다. 빨리 취직하고 싶다나. 나도 당연하게 언니처럼 될 것이라 생각했다. 미래에 대한 꿈이란 게 없었다. 꿈을 꿀 형편이 아니었기에~.

학교 수업은 열심히 들었다. 그냥 심심해서, 할 일이 없어서,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의 재능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줄까 하는 기대감에 들었다. 결과는 전교 1등이었다. 내 재능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, 라는 희망이 현실로 다가온 첫 번째 순간이었다.

중학교 시절을 '공부 잘 하는 이이'로 보낸 나는 지역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. 고등학교에 갔더니 성적이 팍 떨어졌다. 이런 진부한 클리셰가 아니었다. 첫 고등학교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했다. 자부심이 컸다. 학원 하나 안 다니고,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문제집 야금야금 사서 전교 2등을 했다는 게...

공부

계속 공부하면 되겠다,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겠다 생각하며 기뻐했다. 그런데 아빠가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났다.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.

나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. 당장 나 하나 일을 안 한다면,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다 같이 모여 먹는 두 마리에 8,000원짜리 바싹 마른 전기구이 통닭을 못 먹게 되는 정도의 가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깨알 앗다.

엄청 울었다.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. 언니가 나를 안아줬다. 그리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해줬다. 어떻게든 언니가 돈 벌어올 테니, 너는 공부해서 개천에서 용 한번 제대로 나 보라고. 언니가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서 죽을 지경으로 공부했다.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문제집을 샀고 언니가 보태준 돈으로 인터넷 강의 무제한 수강권을 샀다.

힘들어하고 슬퍼할 겨를이 없는 고3을 보냈다. 나에겐 두 번의 기회는 절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, 죽어라 공부만 했다. 그리고 아빠사 싸준 기름범벅 김치볶음밥을 싸들고 수능장으로 향했다.

수능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 채점을 할 때까지 계속 다리를 떨었다. 언니랑 아빠가 나를 위해 희생해준 것이 아무 소용 없어질까 봐.

심호흡을 하고 채점을 했다. 국어 2점짜리, 지구과학 2점짜리에 X표가 쳐져있는 가채점표를 붙들고 온 가족이 목놓아 울었다. (만점에서 저 두 개만 틀린 것이다) 아빠가 엉엉 울며 언니와 나에게 사과했다. 언니와 내가 그렇게 가자고 조르던 아웃백 한 번 못 데려 준 못난 아비 밑에서 잘 커줘서 너무 미안하다고...

그리고 몇 달 후, 나는 연세의대생이 됐다. 현역 정시 연의라는 여섯 글자가 참 대단한 것이더라. 근 세 달 열심히 과외해서 밀린 월세 300을 갚고도 400만 원이 남았다.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언니와 아빠에게 반반 나워 줬다.

패밀리 레스토랑

그리고 오늘, 아빠가 아웃백을 사 줬다. 그것도 4인 랍스터 세트로. 언니와 내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와 랍스터까지 먹는 모습을 본 아빠는 또 울었다. 아빠가 울서 나랑 언니도 또 울었다. 울면서 4인 세트의 모든 음식을 다 먹었다. 배가 찢어지게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. 정말 좋아 보였다. 인생의 한 줄기 빛이 열린 우리 모두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.

끝~

요즘 같은 세상에서 정말 한줄기 희망 같은 글이다. 내가 과연 다시 공부를 한다면 저렇게 할 수가 있을까? 물론 경우에 따라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지만,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무언가를 죽도록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?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물론 많이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선택해서 또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죽도록 피나는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?

솔직히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그 이러한 과정 자체로도 훌륭하고 성공이라고 본다. 

 

반응형

댓글